휠러와 레브론

플렉스 휠러와 케빈 레브로니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선수 생활을 했다. 그리고 올림피아 우승을 향한 그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BY GREG MERRITT

 

이 이야기부터 해 보자.

1992년부터 2002년 사이에 열린 열한 번의 올림피아는 어느 때보다 쟁쟁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그런데 휠러와 레브로니가 그 시기에 2위에 오른 횟수를 모두 합치면 무려 일곱 번이다.

 

사람들은 올림피아 챔피언들의 이름을 따서 특정한 시기를 기억한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이어진 ‘휠러와 르브로니의 시대’다. 둘은 이 시기에 프로 대회에서 총 서른일곱 번을 우승했다. 올림피아에서 우승하지 못한 사상 최고의 보디빌더라고 불리는 플렉스 휠러와 케빈 레브로니는 선수 생활 내내 평행선을 그리듯 비슷한 모습을 보였고, 그러는 와중에 잦은 대결도 펼쳤다. 그리고 그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레브로니는 작년에 불가능해 보였던 미스터 올림피아 컴백에 성공했고, 휠러도 레브로니의 뒤를 따라서 올해 올림피아 무대에 오른다.

 

아마추어기: “대체 레브로니가 누구야?”

모든 것은 1991년에 시작됐다. 1991년에는 사람들이 헐렁하고 요란한 색상의 운동복 바지를 즐겨 입었고, 남자들의 꽁지머리가 유행했으며, 영화배우 마크 월버그는 아직 힙합 밴드인 ‘펑키 번치’의 리더인 ‘마키 마크’로 활동하고 있었다. 1년 전인 1990년에는 플렉스 휠러가 ‘주니어 내셔널즈’에서 헤비급 선수들과 대결해 2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1991년에 휠러가 ‘USA’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케빈 레브로니도 휠러와 같은 길을 밟았다.

휠러는 USA를 2위로 마친 후 11월에 열리는 ‘내셔널즈’ 준비에 매진했다. 레브로니도 마찬가지였다. 레브로니는 당시만 하더라도 프로 자격이 주어지는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하는 무명에 불과했다. 사실 모두가 그랬다. 1991년에 열린 ‘NPC 내셔널즈’ 헤비급은 역대 최강의 라인업을 자랑했다. 1위부터 8위를 차례로 나열해 보면 이렇다. 레브로니, 휠러, 폴 드마요, 로니 콜먼, 매트 멘덴홀, 밥 치케릴로, 크리스 코미어, 에드거 플레처. 휠러는 97킬로그램의 선명한 근육을 자랑했지만 105킬로그램의 압도적 풍만함을 자랑하는 레브로니에게는 상대가 안 됐다.

휠러는 레브로니가 종합 우승을 차지하는 사이에 다시 한 번 2위로 밀려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난 내가 모두의 주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니어 내셔널즈’에서 2위를 했다는 어떤 선수와 날 자꾸 비교하기 시작했다.” 이를 갈며 8개월을 버틴 휠러는 1992년‘USA 챔피언십’에서 손쉽게 우승을 따냈다. 하지만 보디빌딩 팬들은 그 ‘어떤 선수’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그 선수는 벌써 프로 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올림피아 데뷔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신인기: “휠러가 그렇게 대단해?”

인상적인 데뷔였다. 1992년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신인 레브로니는 체중 110킬로그램의 도리언 예이츠에게만 앞자리를 내줬다. 예이츠는 그해 자신의 샌도우 트로피 여섯 개 중에서 첫 번째를 손에 쥐었다. 사실 레브로니는 103킬로그램의 선명한 근육을 자랑했고, 전면과 측면 포즈에서는 세계 최고의 보디빌더라는 예이츠에 버금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결정적으로 밀렸던 부분은 후면 포즈뿐이었다. 그해 레브로니는 프로 데뷔전에서 3위를 했고, 2개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다른 2개 대회에서는 예이츠에게 밀려 2위를 했다.

레브로니는 그렇게 세계에서 두 번째로 뛰어난 보디빌더라는 입지를 다져 나갔다. IFBB 프로 리그에서 신인이 거둔 역대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 기록을 플렉스 휠러가 일 년 후에 뒤집었다(휠러와 레브로니의 데뷔 첫해는 여전히 역대 최고로 여겨진다. 신인이 올림피아에서 우승하지 않는 이상, 이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1993년, 휠러는 두 번만 빼고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 두 번도 모두 2위였고, 올림피아에서 116킬로그램의 예이츠에게 밀려 2위를 하기도 했다(휠러는 올림피아 데뷔전을 앞두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2위를 못 하면 실패한 것이고, 1위를 하면 아주 잘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대회 체중이 102킬로그램이었던 휠러는 ‘아놀드 클래식’을 포함한 다른 네 개 대회에서는 모두 우승했다.

레브로니와도 두 번 맞붙었는데, 두 번 다 이겼으니 우승이 더 달콤하게 느껴졌을 것이다(레브로니는 올림피아에서 108킬로그램의 밋밋한 몸으로 5위까지 떨어졌다). 휠러는 그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뛰어난 보디빌더가 됐다. 내셔널즈에서 자신에게 실패를 선사한 그 ‘어떤 선수’에게도 복수하는 데 성공했고, 올림피아 왕관이 금방이라도 그의 손에 들어올 것만 같았다.

 

라이벌기: “내가 너는 이긴다!”

90년대 중반의 어느 봄날 오후. 레브로니는 캘리포니아주 베니스로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골드짐으로 들어갔다. 레브로니는 휠러와 휠러의 트레이닝 친구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다. 그런 레브로니를 휠러는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최대의 라이벌이 자신의 작업장에 아무런 예고 없이 등장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레브로니는 메릴랜드에서 여행온 관광객이라도 된 것처럼 헬스클럽의 다른 공간으로 쓱 이동했다.

휠러와 친구들은 그 뻔뻔함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래퍼들 사이에서 ‘동부’와 ‘서부’의 대결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레브로니와 휠러의 대면은 총알만 없었다 뿐이지 마치 비기와 투팍을 보는 것 같았다. 비기와 투팍이 같은 파티 장소에 등장했는데 서로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된다. 눈길을 줄 가치도 없으니까. 1993년 이후로 레브로니와 휠러는 같은 자리를 놓고 싸움을 벌였다.

 

1인자 혹은 도리언 예이츠와 로니 콜먼에 이은 2인자 자리 말이다. 샌도우 트로피를 정녕 손에 넣을 수 없다면 비기에게 밀리지 않는 투팍 혹은 투팍에게 밀리지 않는 비기라도 되어야 했다. 당시엔 둘의 극심한 라이벌 관계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누가 예이츠와 콜먼을 꺾을지에 더 많은 관심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예이츠와 콜먼을 꺾지 못했고, 2006년이 되어서야 제이 커틀러가 그 일을 해냈다. 레브로니와 휠러가 은퇴하고 3년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되돌아보면 더 흥미로운 질문은 따로 있었다. 1993년부터 2000년만 놓고 봤을 때 케빈 레브로니와 플렉스 휠러 중에서 누가 더 뛰어난 보디빌더일까? 둘 사이엔 공통점도 많다. 키(176센티미터)와 체중(102~109킬로그램)도 비슷하고, 근복도 길고, 광배근도 비교적 좁다. 물론 골격 구조나 체형은 확연히 달랐다.

 

90년대에는 ‘메릴랜드의 근육 머신’이라고 불리던 레브로니가 더 두꺼운 근육을 자랑했다. 레브로니의 폭발적인 모스트 머스큘러와 사이드 체스트 포즈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반면에 ‘대칭미의 황제’라고 불리던 휠러는 더 아름다운 상체 V라인과 근육의 흐름을 보여 줬다. 우아한 프런트 더블 바이셉스나 프런트 랫 스프레드에서 그런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났다.

신인 시절에는 휠러가 성공을 거뒀지만 이후 레브로니가 사이즈를 앞세워 심사 위원들에게 점수를 따기 시작했다. 1996년 말에 르브로니는 휠러를 상대로 5승 2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4개 대회 연속으로 휠러보다 높은 순위에 올랐고, 올림피아나 아놀드 클래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4월, 휠러는 <플렉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선수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레브로니에게는 싫은 티를 냈다. “X나 과대평가됐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행동으로 보여 줬다. 휠러는 부족했던 사이즈를 늘리고, 예쁜근육 형태를 앞세워서 전세를 역전했다.

 

그리고 레브로니를 여섯 번 연속으로 눌렀다. 1998, 1999년 올림피아에서 2위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두 번의 대결에서는 레브로니가 휠러를 이겼다. 바로 2000, 2002년 올림피아다(휠러는 신장병 진단을 받은 후 2000년 대회에 참가했었다). 레브로니는 두 대회에서 모두 2위를 하며 올림피아에서만 2위를 총 네 번 하게 됐다. 휠러의 3회보다 앞서는 기록이었다.

 

하지만 휠러는 레브로니보다 올림피아에 여섯 번이나 적게 나갔고, 아놀드 클래식에서 2배나 많이 우승했으며(2회 대 4회), 참가한 대회 숫자도 30개나 적지만 레브로니 못지않게 많이 우승했다. 그래서 샌도우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사상 최고의 보디빌더가 레브로니인지 휠러인지를 놓고 팬들은 아직도 다양한 의견을 쏟아낸다. 사실 둘은 지나치게 과소평가됐다고 보는 것이 맞다. 만약 두 선수가 다른 시대(현재를 포함한)에 활동했다면 올림피아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을 것이다. 서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 말이다.

 

은퇴기: “이제 우정이나 쌓아 보자.”

닮은 점이 많다 보니 서로를 업신여기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둘 사이에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싹텄다. 사실 그렇게나 많이 맞붙었으니(1991년 내셔널즈부터 2002년 올림피아까지 총 열다섯 번) 상대방의 육체가 얼마나 뛰어난지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두 선수 모두 2003에 마지막 포징을 취했다. 동부 최고의 보디빌더라고 불리던 레브로니는 은퇴한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몇 년을 살며 배우의 꿈을 좇았다.

그리고 서부 최고의 보디빌더라고 불리던 휠러는 캘리포니아 북부로 돌아갔다. 상금을 놓고 포징 대결을 펼칠 필요가 없어지자 둘 사이엔 곧 우정이 싹텄고, 우정은 나날이 깊어졌다. 휠러가 2008년에 미네소타에서 자신의 이름을건 NPC 대회를 주최할 때 레브로니는 정장을 갖춰 입고 무대에 올라 연설을 했다. 이후로도 90년대 보디빌딩을 주름잡았던 두 강철의 거인은 대회를 해설하는 해설자로서, 제품과 서비스를 홍보하는 사업가로서, 그리고 단순한 친구로서 만나고 또 만났다. 몸은 예전보다 작고 밋밋해졌지만 그냥 함께 있는 것이 즐거운 친구처럼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부활기: “친구여, 넌 할 수 있어!”

할리우드에서 배우의 꿈을 좇느라 체중이 90킬로그램 밑으로 떨어진 레브로니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요즘도 중량 드세요?” 답은 ‘아뇨’였다. 하지만 레브로니는 곧 헬스클럽으로 돌아갔다. 드는 중량의 무게가 늘어날수록 몸도 다시 커졌고, 한때는 꿈처럼만 여겨졌던 컴백 가능성이 점점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휠러도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레브로니를 독려했다.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레브로니뿐이다. 극심한 트레이닝을 한참 쉬었기 때문에 사실 건강 상태는 웬만한 선수보다 좋을 것이다. 흥분된다.

어떤 일을 해낼지 기대된다.” 휠러가 말했다. 무대에서 14년을 떠나 있던 레브로니는 52세의 나이로 작년에 미스터 올림피아로 돌아왔다. 전매특허인 모스트 머스큘러 포즈만 놓고 보면 상체는 예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승모근, 삼각근, 팔의 밀도도 대부분 회복됐고, 약속한 것처럼 컨디션도 좋았다. 하지만 다른 포즈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하체도 부족했다. 결국 15위 안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5,083일 만에 치른 대회이고, 그가 은퇴자협회 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았다. 휠러도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 그게 진짜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에겐 영감이 필요하다.” “플렉스 휠러가 정말 좋다. 살면서 만난 모든 사람 중에서 날 100퍼센트 지지해 준 사람은 플렉스 휠러와 크리스 코미어뿐이다.” 레브로니가 말했다. 그리고 휠러가 올림피아 복귀를 준비하자 레브로니도 도우려 나섰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100퍼센트 지지할 것이다. 휠러를 사랑하고 존중한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몸을 지닌 선수다. 예전부터 존경했고, 정말 멋진 사람이다. 무대로 돌아간 모습을 보고 싶다. 어떤 식으로든 도울 수 있다면 영광일 것이다.”

 

9월 15일. 52세의 플렉스 휠러가 클래식 피지크 올림피아에 참가한다. 피지크 부문의 체중 제한 때문에 몸은 예전보다 작아 보이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휠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 클래식 피지크 부문에서는 근육의 형태와 비율을 높게 치는데, 그것이 바로 휠러의 강점이니까 말이다. 24년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휠러는 이번에도 레브로니보다 1년 뒤에 올림피아 무대를 밟게 됐다. 당시 휠러는 신인으로서 올림피아 2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바로 1년 전에 레브로니가 똑같은 업적을 달성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일이었다. 레브로니는 휠러의 올림피아 컴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부정적인 말들이나 예상 순위에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플렉스의 몸을 다시 예전처럼 키워서 무대로 올려야 한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90년대 보디빌더들은 서로에게 힘이 돼 줘야한다. 다시 무대로 돌아가 자기 몸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것은 결코 헛된 생각이 아니다.” 둘은 한때 가장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지만 지금은 가장 충성스런 친구가 됐다. 만약 플렉스가 올해 올림피아에서 꿈에 그리던 우승을 차지한다면 레브로니가 관중석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환호할 것이다.

 

레브로니와 휠러의 올림피아 기록

년도 레브로니 휠러
1992 2위
1993 5위 2위
1994 3위
1995 2위 8위
1996 3위 4위
1997 4위
1998 4위 2위
1999 4위 2위
2000 2위 3위
2001 3위
2002 2위 7위
2003 6위
2016 순위권 밖

 

휠러와 레브로니의 기록

기록 휠러 레브로니
프로 대회 참가 횟수 33회 63회
프로 우승 17회 20회
프로 평균 순위 상위 2.03% 2.47%*
올림피아 참가 횟수 7회 13회
올림피아 2위 3회 4회
올림피아 평균 순위 상위 4% 상위 3.33%*

*2016 올림피아 성적은 제외.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한 횟수

휠러 8회

레브로니 7회

 

역대 올림피아 컴백

이름 무대를 떠나 있던 시간(년) 순위
루 페리노 17 12위
플렉스 후리러 15 ?
케빈 레브로니 13 순위권 밖
서지오 올리바 12 8위
아놀드 슈워제네거 5 1위
프랑코 콜럼부 5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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