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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x - Athletes & Celebrities

CLASSIC FLEX

CLASSIC FLEX – 클래식 플렉스

플렉스 휠러가 올림피아로 돌아온다. 이번에는 클래식 피지크 체급이다. 그가 마침내 올림피아에서 우승할지도 모르는 이유를 공개한다.

글: GREG MERRITT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2위를 세 번이나 하고 아놀드 클래식에서 네 번이나 우승한 플렉스 휠러는 올림피아 트로피를 손에 거머쥐지 못 한 최고의 보디빌더로 손꼽힌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도 플렉스를 사상 최고의 보디빌더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몸만 봤을 때, 즉 대칭미와 형태, 사이즈만 놓고 이야기하면 그렇다는 뜻이다. 플렉스는 현대적인 흐름에 맞게 몸의 곡선을 살리고 커팅을 하면서도 항상 고전미가 흐르는 육체를 유지했다. 9월 15일, 올림피아에 마지막으로 참가한 해로부터 15년이 지난 52세의 플렉스가 세계 최고의 보디빌딩 대회로 돌아온다. 이번에는 예전과는 다르면서도 그와 잘 어울리는 타이틀을 노리고 있다. 바로 클래식 피지크 체급이다. 플렉스가 고전미의 왕으로 꼽히는 데에는 아홉 가지 이유가 있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플렉스가 드디어 올림피아 트로피를 손에 넣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균형을 잡아라

90년대에 플렉스의 몸에서 가장 멋졌던 부위는 무엇일까? 팔? 대퇴사두근? 삼각근? 이 세 가지 모두 정답이며, 정답이 몇 개 더 있기까지 하다. 사실 플렉스는 특정한 신체 부위만으로 주목받았던 적은 없다. 플렉스보다 팔이나 대퇴, 삼각근이 좋았던 선수는 있지만 플렉스의 컨디션이 절정일 때는 그 누구도 플렉스의 균형미를 따라가지 못 했다. 그래서 플렉스를 볼 때는 몸 전체를 봐야 한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이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플렉스와 트레이너 찰스 글래스는 매년 플렉스의 몸을 평가해서 전신의 균형을 맞추려면 더 집중해야 하는 부위를 골라서 운동했다. 글래스는 루틴까지 거기에 맞춰서 짰다. 그들의 목표는 항상 완벽하고 균형 잡힌 육체였다.

 

중년의 근육

1993년, 27세에서 28세로 넘어갈 무렵의 플렉스는 IFBB 프로 무대를 휘잡았다. 출전한 6개 대회 중 4개 대회에서 우승했는데, 그중엔 아놀드 클래식도 있었다. 미스터 올림피아를 포함한 나머지 2개 대회에서는 2위를 했다. 플렉스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17번 우승했다. 아놀드에서만 4회 우승했고, 올림피아에서는 2위를 세 번 했다. 이 모든 것을 보디빌더의 전성기인 27~35세 사이에 이뤄 냈다. 플렉스의 마지막 대회는 2003년 2월 15일이었다. 올해 열리는 올림피아로부터 정확히 14년 6개월(5,296일) 전이다. 40대를 무대 밖에서 보낸 것이 그에게 득이 될까, 독이 될까?

또 다른 IFBB 프로인 데럼 찰스는 작년에 클래식 피지크 체급으로 복귀해 5개 대회에서 우승했고 올림피아에서도 5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찰스는 겨우 3년간 대회를 쉬었었고, 당시 나이도 46~47세였다. 플렉스와 더 근접한 예는 케빈 레브로니다. 90년대에 플렉스의 라이벌이었던 케빈은 13년의 공백기를 깨고 작년 9월에 52세의 나이로 올림피아에 복귀했지만 15위권 진입에 실패했다.

물론 플렉스도 9월 15일에 52세의 나이로 올림피아 무대에 오르지만 플렉스는 맘두 엘스비아이나 로엘리 윙클러 같은 거인들과 겨루지 않는다. 대니 헤스터도 47세의 나이에 77kg이 안 되는 체중으로 올림피아 클래식 피지크 체급에서 우승했다. 클래식 체급의 체중 기준을 볼 때 플렉스는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몸으로 무대에 올라야 한다. 결국 사이즈보다는 형태와 커팅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다. 그래서 플렉스가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근육으로 승부수를 던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보디빌더로서 전성기였던 90년대의 플렉스. 당시 플렉스는 올림피아에서 2위에 세 번 이름을 올렸다. 28세의 신인 시절에 참가한 1993년 올림피아에서도 도리안 예이츠와 접전을 펼쳤다.

 

환영을 만들어라

플렉스는 예전부터 유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 있었다. 근복은 풍만하고, 관절은 작으며, 엉덩이가 슬림하고, 몸이 초자연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유일하게 없는 것은 넓은 쇄골이었다. 그래서 플렉스는 1992년 USA 대회에서 우승한 후 삼각근에 특별한 중점을 두고 운동하기 시작했다. 타고난 골격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말이다. 플렉스의 어깨 루틴은 보통 운동 여섯 가지와 21세트로 구성됐고, 삼각근의 세 머리를 자극하는 운동을 두 가지씩 포함시켰다.

예를 들면 전면 삼각근은 스미스머신 숄더 프레스와 바벨 프런트 레이즈, 측면 삼각근은 시티드 덤벨 사이드 레터럴 레이즈와 와이드-그립 업라이트 로우, 후면 삼각근은 라잉 인클라인 덤벨 리어 레터럴과 머신 리어 레터럴로 자극하는 식이다. 각 운동을 10~12회씩 3~4세트 실시했다. 90년대 중반 무렵에는 삼각근이 정말 큼직해지고, 등 근육도 빽빽하고 세밀해져서 쇄골이 좁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어졌다. 그것은 일종의 환영이었다. 결국 보디빌딩이란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수준 높은 마술과 비슷하다.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며 전체적인 균형을 맞춰 나가면 과거의 결점들이 어느새 사라진다.

 

새로운 문신을 새긴 중년의 플렉스는 한결같이 거대한 팔로 해머 컬을 실시했다.

 

꾸준함이 보상을 준다

1994년, 플렉스는 금방이라도 보디빌딩계의 정상에 오를 것처럼 보였다. 플렉스는 신인 시절에 참가한 올림피아에서 2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고, 94년 봄과 여름은 대회를 쉬면서 가을에 열릴 세계 최고의 보디빌딩 대회에서 우승을 노렸다. 그런데 6월 9일에 닥터드레의 자택에서 돌아오다가 타고 있던 벤츠가 완파되면서 목이 부러졌다. 몸이 마비되거나 사망할 수도 있는 사고였다. 놀랍게도 플렉스는 8개월도 안 돼서 복귀해 한 대회에서 우승한 후 아놀드 클래식에서 2위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건강 문제를 떨쳐내고 복귀하는 것은 그처럼 쉽지 않았다. 플렉스는 2000년 올림피아에서 3위에 오른 후 신장병 진단을 받았고, 결국 은퇴했다. 그런데 2년 후에 돌아와 2002년 올림피아에서 7위라는 존경스러운 성적을 냈다. 2003년에 참가한 마지막 오픈 체급 대회에서는 막강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3위를 했다. 체구가 작아진 플렉스는 결코 젊은 시절의 몸은 아니었지만 고전미 가득한 형태만 놓고 보면 여전히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보디빌더였다. 그리고 2003년 9월, 플렉스는 신장 이식을 받았다.

그 후로 플렉스는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관리를 놀라울 정도로 잘했다. 새로운 문신이 새겨진 거대한 팔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플렉스는 필 히스가 채 데뷔하지도 않았던 시절에 무대에서 내려왔다.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세대의 보디빌더들이 정상을 점령하고 있다. 15년간 올림피아 무대를 떠났던 플렉스가 세 번째 컴백에 성공할까? 그것도 새로운 체급에서? 플렉스는 누구보다 컴백을 잘 안다. 무려 두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비난하는 사람들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 그렇게 보면 이번엔 오히려 더 쉬울지도 모른다.

 

플렉스는 1994년 교통사고에서 운 좋게 살아났다. 그리고 8개월 후에는 아놀드 클래식에서 2위를 했다.

 

숫자에 집착하지 마라

90년대 중반에 도리안 예이츠가 118kg의 체중으로 올림피아 트로피를 싹쓸이하자 플렉스도 체중계에 뜨는 숫자를 늘리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 하지만 플렉스는 거절했다. 그건 플렉스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벌크 사이즈로 예이츠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고, 사이즈를 키우려 애쓰는 것은 예이츠의 작전에 놀아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대신에 플렉스는 고전미가 흐르는 몸의 선을 유지하면서 전략적으로 몸을 키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글을 주름잡던 모든 거인들을 무찔렀다. 예이츠만 빼고 말이다. 인터넷에서 “플렉스 휠러, 135kg 시절”을 검색하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다. 그런 사진은 없으니까. 플렉스는 1년 내내 대회 체중에 놀랍도록 가까운 체중을 유지했고, 당대 보디빌더들처럼 허리를 두껍게 만들지도 않았다. 플렉스는 저울이 아닌 거울을 가이드로 삼아 고전미를 지켰다. 체중이 108kg이 됐을 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플렉스가 52세의 나이로 체중을 줄이고 클래식 피지크 체급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팀을 짜자

베니스에 있는 골드 짐에서 플렉스는 팀의 스타 선수였고, 트레이너 찰스 글래스는 감독이었다. 플렉스의 팀 동료는 크리스 코미어, 리코 매클린턴이었다. 골드 짐에서도 힘 좋기로 유명한 선수들이었다. 감독과 팀 동료들이 합심해 플렉스를 밀어붙였다. 그들은 플렉스의 육체를 평가해서 미래의 계획을 짜는 것까지 도왔다. 플렉스는 보디빌딩을 상징하는 골드 짐의 첫 번째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서 포즈를 취했고, 감독과 동료들은 플렉스를 평가했다. “삼각근 바깥쪽이 부족해”, “등 아래쪽이 아직 좀 그래”, “탄수화물 줄여”, “유산소운동도 줄여.” 팀원들―그들은 올림피아가 다가올 때마다 ‘팀 플렉스’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의 전문적인 지적 덕분에 플렉스는 약점을 제거하고, 몇 번이고 컨디션을 절정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스탠 에퍼딩이 친구를 돕고 있다. 올림피아 복귀를 준비하는 플렉스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각도를 활용하자

골드 짐의 요다라고 불리는 글래스의 지도 방식은 ‘앵글 트레이닝’이다. 글래스는 목표 근육을 조금이라도 다른 각도에서 자극할 수 있도록 운동을 끊임없이 수정한다. 제다이의 기사들을 상자에 앉혀 놓고 로우-케이블 로우를 하게 하기도 했다. 손잡이를 살짝 복부 위쪽으로 당겨서 등 안쪽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인클라인 플라이를 할 때도 상부 흉근의 자극을 더 잘 느끼려고 몸을 벤치 상단에 놓고 실시하곤 했다. 백 익스텐션을 할 때는 둔근과 고관절굴곡근을 배제하고 기립근만 자극하려고 가동범위를 좁혔다. 플렉스는 글래스가 자신에 맞게 짜 준 루틴에 따라서 이것 말고도 수없이 다양한 운동을 했다. 동작에 작은 변화만 줘도 몸에는 큰 변화가 생긴다.

 

항상 성장하자

플렉스 본인도 인정하다시피 그가 한창 올림피아에 매진할 때는 그리 친절한 선수가 아니었다. 팀 동료가 아닌 선수들과는 거리를 뒀고, 헬스클럽에 들어가 운동만 하고 나왔다. 하지만 당시는 소셜미디어가 없던 시절이었다. 플렉스가 뒤쫓던 예이츠의 별명이 ‘그림자(shadow)’였던 이유도 평소에는 멀리 떨어진 영국의 지하 감옥 같은 헬스클럽에서 운동만 하다가 매년 가을에만 올림피아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보디빌더들의 우두머리인 예이츠와 마찬가지로 정상급 선수들은 꼬치꼬치 캐묻는 기자들의 질문이나 호기심 가득한 팬들의 카메라를 꺼렸다. 그 시절엔 그랬다.

혹은 수줍음이나 불안함을 감추려 냉담하게 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플렉스는 근육은 줄어들었을지언정 인격은 한층 더 성장했다. 은퇴 후에는 그 누구보다도 친절하게 사람들과 어울렸다. 놀라운 변화였다. 사람이 성장하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며, 우리 모두 더 나은 인간―지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좋은 예다.

 

플렉스는 아놀드 4회 우승을 포함해 프로 대회에서 17회 우승했고, 올림피아에서 세 번이나 2위를 했다.

 

절제

플렉스는 올림피아에 7회 출전했다. 그중 처음 세 번의 대회에서는 예이츠―적은 운동량으로 효율을 추구하는 암살자―가 우승했고, 마지막 네 번의 대회에서는 로니 콜먼―역사상 가장 힘이 센 인간―이 우승했다. 다른 보디빌더였다면 예이츠나 로니를 따라 운동 강도나 중량을 늘릴 수도 있었겠지만 플렉스는 자신의 길을 갔다. 적당한 반복 횟수와 중량, 강도로 말이다. 그의 고전미도 그 덕분일지 모른다. 무겁고 강하게만 운동하는 보디빌더는 근육을 몸에 급하게 붙인 것 같은 인상을 주곤 한다. 마치 조각상을 만들 때 찰흙을 아무 데나 덕지덕지 붙인 것처럼 말이다. 반면에 플렉스의 몸에 있는 모든 근육의 선과 결에는 다 이유가 있어 보인다. 예이츠나 로니와 다르게 플렉스는 트레이닝을 하다가 심한 부상을 당한 적도 없다. 중년에 컴백을 준비하는 플렉스에겐 이것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 플렉스가 그가 있어야 할 곳인 올림피아 무대로 곧 돌아온다.

 

플렉스 휠러의 어깨운동 루틴

EXERCISE SETS REPS
Smith Machine Press  3–4  10–12
Barbell Front Raise  3–4  10–12
Lateral Raise  3–4  10–12
Wide-grip Upright Row  3–4  10–12
Rear Lateral Raise  3–4  10–12
Reverse Pec Deck  3–4  10–12

 

52세의 플렉스가 다시 올림피아 타이틀을 노릴 수 있을까?

플렉스 휠러 프로필
생년월일: 1965년 8월 23일
키: 176cm, 체중: 108kg
거주지: 캘리포니아 산호세
주요 수상 경력: 1993, 1998~99 미스터올림피아 2위/1993, 1997~98, 2000 아놀드 클래식 우승/1993, 1995~1998 아이언맨 프로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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