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nect with us

Flex - Athletes & Celebrities

Life After Body Building – DENNIS JAMES

Life After Body Building – DENNIS JAMES (데니스 제임스의 보디빌딩 라이프 그 후)

1990~2000년대에 활동한 데니스 제임스는 경쟁자들을 겁에 질리게 만드는 보디빌더였다. 그의 근황을 소개한다.

 

시합장에서 장내 아나운서가 당신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호명하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신이라면 관중이 환호를 멈췄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 사실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 하는 보디빌더가 많다. 그런 선수들은 선수 생활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사라져버린다. 데니스 제임스는 그런 선수가 아니다. 혜성처럼 등장해 1998년 NPC USA에서 우승한 제임스는 이후 2012년까지 프로 무대에서 활동하며 세 번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마지막 대회인 마스터즈 올림피아에서 3위를 기록한 후에는 미래에 대한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는지 무대를 떠난 이후의 삶을 꼼꼼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제임스가 <플렉스>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프로 보디빌더로 활동하며 얻은 수많은 삶의 교훈을 들려줬다.

 


더 이상 전성기의 컨디션을 보기는 힘들겠지만 제임스의 근육량은 여전히 상당하다. 선수 시절에 ‘위협 그 자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제임스는 요즘도 보디빌딩 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FLEX: 보디빌딩 이후의 삶을 처음으로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데니스 제임스: 처음부터 준비했었다. 난 1998년에 프로 카드를 땄고 2년 후에 웨이더와 첫 번째 계약도 맺었다. 그 돈을 다 저축했다. 사실 2014년까지 웨이더 소속 선수였는데 그때 번 돈은 하나도 안 썼다.

 

FLEX: 경제적으로 풍족해서 저축한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염두에 두고 저축한 것인가?

난 빈털터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이 하루아침에 끝날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내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기더라도 생존할 길을 마련해 두고 싶었다.

 

FLEX: 생계는 어떻게 꾸려 나갔는가?

1994년에 동업자 두 명과 헬스클럽 하나를 샀다. 당시에는 태국에 살아서 생활비가 별로 안 들었다. 프로에 입문하기 전부터 수입이 있었고, 프로가 된 후로는 대회, 세미나, 게스트 포징으로 돈을 벌었다.

 

FLEX: 다른 선수에게 조언을 듣기도 했나?

선수 생활 초기에 플렉스 휠러가 돈을 똑똑하게 관리하라고 충고했다. 자기처럼 자동차를 사느라 돈을 다 쓰지 말라고 말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정상급 보디빌더는 다 백만장자인 줄 알았는데 실상을 알고 보니 많은 보디빌더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FLEX: 그런 사실을 알고 어떻게 바뀌었는가?

그들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기 싫었다. 프로 보디빌더는 직업이고, 보디빌더로 일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 난 겨우 생활비나 마련하려고 매일 12~14시간씩 일하긴 싫었고, 돈을 날리기도 싫었다. 돈은 꼭 필요한 데에만 쓰고,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날 홍보하려 열심히 노력했다.

 

FLEX: 데니스 제임스란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선수 생활 초기(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부터 자기 홍보에 매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태국에 살아서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다. 발전 과정을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처음으로 올린 보디빌더도 나였다. 당시는 모뎀을 쓰던 시절이라 사진 한 장 올리려면 몇 시간이 걸렸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다. 이름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언론에 더 자주 노출하고 수입을 늘리려면 미국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사실도 곧 깨달았다. 해외에 사느라 수많은 게스트 포징 행사나 돈 벌 기회를 놓쳤었다. 그래서 2006년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FLEX: 데니스 제임스란 브랜드를 만드는 데 성공한 비결은 무엇인가?

팬들을 절대 잊지 않았다. 팬은 정말 중요하다. 아무리 피곤해도 항상 팬들을 위한 시간을 마련했다. 다른 스포츠에서는 선수가 팬을 어떻게 대하든 받는 돈은 똑같다. 하지만 보디빌딩에서는 팬을 잘 대접해야 응원을 오랫동안 받을 수 있다. 그 팬들이 친구까지 팬으로 만든다.

 

FLEX: 은퇴는 언제부터 생각했는가?

2008년부터 마음속으로는 정리를 시작했다. 죽기 전에 올림피아에서 우승하지 못 할 것이라는 사실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살다 보면 예전과 똑같은 자극을 몸에 가하고 똑같이 노력해도 몸이 더 이상 예전처럼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FLEX: 시간을 다시 현재로 돌려 보자. 은퇴 후의 삶이 계획한 대로 흘러 왔는가?

물론이다. 몸도 건강하고, 요즘도 나라는 브랜드를 알리려 열심히 노력한다. 특히 ‘고릴라 웨어’와 일을 많이 한다. 내 이름을 건 대회인 ‘데니스 제임스 클래식’도 주최하고, 세계를 돌며 행사나 세미나에도 참가한다. 인도와 호주, 애리조나 주 글렌데일에 있는 헬스클럽의 대표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데니스 제임스 뉴트리션’도 창업했다.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고품질 보충제를 판매할 계획이다.

 

요즘 제임스는 선수 시절에 트레이닝에 집중하던 것처럼 보디빌딩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FLEX: 데니스 제임스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팬과 관계를 쌓았기 때문이다. 내가 팬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을 팬들도 안다. 난 세미나에서 진실만 말하고, 모든 질문에 정직하게 답한다. 팬이나 다른 선수들을 항상 진심으로 대한다. 데니스 제임스란 이름은 진실과 품질을 상징한다.

 

FLEX: 현역 프로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치열하게 경쟁하라. SNS 프로필에 “IFBB 프로”라고만 적어 두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다른 프로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하고, 마케팅도 해야 한다. 돈 관리도 잘하자. 감당하기 힘든 물건은 사지 말자. 파티를 즐기지도 말고,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려고도 하지 말자. 분수에 맞게 살자. 그러면 은퇴해도 잘 살 수 있다. 돈 날릴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팬을 잊지 말자. 당신 생활비를 대주는 것은 결국 팬이다.

 

데니스 제임스 프로필

생년월일: 1969년 5월 31일

키: 173cm

체중: 117kg

거주지: 애리조나 주 글렌데일

우승 경력: 2009년 탬파 프로, 유로파 슈퍼쇼, 2001년 헝가리 그랑프리, 1998년 USA 슈퍼헤비급 및 종합

 

Muscle & Fitness Korea 콘텐츠 관리자 / 대회 기사 및 취재 요청은 Contact 메뉴에서 신청서를 작성 해주시면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More in Flex - Athletes & Celebrities

  • ASK LEE – A DATE WITH DESTINY

    A DATE WITH DESTINY (운명과 같은 날들) 1982년은 리 해니에게 잊을 수 없는 해다....

  • RETRO ATHLETE – DENNIS JAMES

    DENNIS JAMES (데니스 제임스) 데니스 제임스는 ‘위협’이라는 별명답게 역대 가장 밀도가 높은 흉근을 자랑했다....

  • WEIDER ATHLETES WEIGH IN

    후안 모렐 Q: 당신은 무대에서 9개월을 떠났다가 콜럼버스에서 열린 아놀드 클래식에 참가했다. 다시 대회에...

  • ASK THE CHAMP – DAYS TO REMEMBER

    DAYS TO REMEMBER (잊기 힘든 나날들) 프로젝트 플렉스, 플렉스 루이스 클래식, 그리고 2017년의 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