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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진 별, 달라스를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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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진 별, 달라스를 기억하다

달라스 맥카버의 짧았던 인생과 경력, 그리고 그가 남기고 간 유산을 살펴보자.

글: 피터 맥거프

 

마지막 계획

2017년 8월 21일 월요일, 플로리다주의 보카레이턴에 있던 스물여섯 살의 달라스 맥카버와 켄터키주 렉싱턴에 있던 달라스의 코치이자 스승, 그리고 절친한 벗인 스물여덟의 맷 얀센은 문자 메시지로 대화하고 있었다. 늘 그래 왔듯 하루를 마무리하며 서로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다.

오하이오주 콜롬버스에서 3월에 열리는 2018 아놀드 클래식에 도전하기 위해 그들은 프로그램을 완전히 재정비했다. 원래 계획은 9월 말까지의 비시즌 기간 동안 성장 모드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주간 속력을 약간 늦춘 다음, 12월 초부터 다시 제대로 아놀드 클래식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달라스는 척추 아래쪽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고, 특정 운동에서는 전체 가동 범위를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맷은 그에게 이렇게 보냈다. “너무 집착하지 말자고, 친구. 9월 말까지 질주하는 대신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자. 긴장 풀고 아놀드 클래식 준비를 더 빨리 시작하는 걸로 해.” 두 사람은 동의했다. 달라스는 “내일 보자”는 말로 대화를 마쳤다.

맷은 그날 밤 한참 동안 아놀드 클래식을 새롭게 준비할 계획을 세웠다. 2018 아놀드 클래식의 목표는 달라스의 훈련법을 간소화하고, 그의 둔근과 햄스트링을 보다 섬세하게 조각하고, 담백하고 단단한 127kg의 체중을 만드는 것으로 정했다. 맷은 이제 계획을 적절히 수정했으니 곧 달라스가 아놀드 클래식에서 우승할 거라고 생각하며 만족스럽게 잠에 빠져들었다. 정말이지 그날 밤은 달라스 맥카버와 맷 얀센에게 모든 것이 완벽한 밤이었다.

 

가족의 품에서 죽음을 맞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을 때는 달력에 없던 새로운 하루를 선물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새로운 하루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보디빌딩 업계에는 쇼크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앞으로 몇 년간 많은 이가 ‘그 소식’을 듣던 날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 루머와 가짜 뉴스의 홍수 속에서 전해진 그 소식은, 차라리 루머였으면 하는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졌고, 우리는 곧 알게 되었다. 그것은 루머가 아닌, 진실이었다. 달라스 맥카버, 세상 가장 촉망받는 보디빌더 중 하나였던 그가 스물여섯의 나이로 사망했다. 겨우 스물여섯에….

8월 21일 월요일의 늦은 저녁, 달라스는 운동을 마치고 보카레이턴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자정이 되기 직전, 올림피아 준비를 위해 3주간 달라스와 같이 생활하고 있던 호주 출신의 보디빌더 조시 레나토위츠도 체육관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조시가 발견한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달라스는 바닥에 엎드린 채였고,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으며, 꼭 질식해 죽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시는 당장 달라스를 붙잡고 CPR을 실시한 다음, 곧 도착한 응급 의료진에게 바통을 넘겼다. 달라스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보디빌딩계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휩싸였다. 이런 대규모의 충격은 유례가 없던 것이었다. 어떻게 겨우 26살밖에 안 된 청년이 그토록 갑자기, 그토록 허무하게 인생의 전성기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다음날 맷 얀센과 긴 대화를 나눴다. 맷이 현재 겪고 있는 트라우마에 비추었을 때, 우린 그가 얼마나 달라스를 신뢰하고 그의 시합을 위해 헌신해 왔는지 알 수 있다. 그가 때로 감상적으로 변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맷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그 젊은 선수를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일반적인 기사 형식을 깨고 달라스 맥카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맷의 삶에 스며 있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의 모습을 전한다.

 

타고난 보디빌더 달라스

20대 때 프로가 되는 보디빌더는 보통 흔치 않다. 그러나 달라스 맥카버는 보통 이상의 선수였다. 테네시주 잭슨 출신의 그는 21세 때 프로 카드를 획득했다. 2012 북미 챔피언십에서 체중 109kg으로 슈퍼-헤비웨이트 부문과 전체에서 우승한 것이다. 큰 체격으로 인해 그는 곧 ‘거대한 남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프로 데뷔 무대인 2015 캘리포니아주 프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까지 2년 8개월간 체중을 118kg까지 늘렸다. 몇 달 후 체중을 조금 더 증량한 그는 올림피아 데뷔 무대에서 13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2016년에는 시카고 프로에서 우승하며 올림피아 8위로 격상되었다. 그는 밝게 빛나는 별이었다. 하지만 그 별은 안타깝게도 항성이 아니라 잠시 놀라운 빛을 발산한 뒤 빠르게 사라지는 초신성이었나 보다.

맷: “우리가 처음 서로를 알아본 건 2015 올림피아에서였어요. 우린 급격히 친해졌죠. 그가 이제 곁에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요. 월요일 밤까지만 해도 그다음 해가 너무나 선명히 보였는데…. 오늘(화요일) 전 그저 사진만 들여다보며 그가 없다는 사실, 그러니까 그의 찬란한 미래가 사라져 버렸으며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관계 속에서 난 여러 역할을 했어요. 때론 형, 때론 아버지로서 그에게 말하곤 했죠.

 

‘정신 차려, 인마.’

제가 가장 뚜렷이 기억하는 것은 훈련이나 시합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할 때 얼마나 즐거웠던가 하는 거예요. 그는 2015 올림피아를 준비하기 위해 제 아내 조던, 그리고 저와 4주 동안 함께 살았어요. 우리는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차로 90분간 함께 달렸죠. 처음 30분 동안 그는 조용했어요. 그는 조던과 내가 그에게 베푼 모든 것에 진심으로 고맙다고 가만히 말했습니다. 나와 조던의 집에 머무를 수 있게 해 주어서―특히 조던의 뛰어난 요리 솜씨를 추켜세워 주었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뢰를 선물해 주어서 고맙다고요. 그러더니 컨트리 음악 메들리를 부르기 시작했죠. 새미 커쇼의 ‘Queen of My Double Wide Trailer’를 목청껏 부르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놀라운 남자 달라스

왜 달라스의 비극이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까? 첫째로는 그의 나이가 있다. 26세에 맞는 죽음은 결코 흔치 않다. 보통 자녀는 부모보다 오래 사는 법이다. 그맘때 우리는 앞으로 남은 50년의 삶을 기대하고 계획한다.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앞으로의 수십 년에 달라스는 영영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외모다. 많은 남자들이 우러러보는 깔끔하고 근사한 근육으로 그는 보디빌딩계에서 가장 거대한 몸을 뽐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보다 더 중요한, 그를 추모하며 언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달라스가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처음 만나자마자 그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에게는 경계를 허무는 어떤 매력이 있었다. 그를 고용한 대회 홍보 담당자들은 그의 친화력과 에너지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와 함께 셀카를 찍을 기회를 얻은 팬들은 그가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어주던지 황홀함에 벅차오르곤 했다. 잡지사들은 사진 촬영에 임하는 그의 전문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모든 특별함은 그와 관련된 영상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달라스를 만나고 그를 사랑하게 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달라스 맥카버는 놀라운 사람이었다고.

 

2017년의 달라스

2016년 달라스는 애런 싱거맨이 이끄는 그의 스폰서 업체 ‘레드콘’과 보다 가까이 가기 위해 보카레이턴으로 이사했다. 그는 플렉스 루이스의 ‘프로젝트 플렉스 짐’에서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시작했고, 플렉스와는 종종 운동 파트너가 되었다. “보카레이턴 대 쿠웨이트의 형국이었죠.”라고 당시 달라스가 말했다. 2017년에 그는 콜럼버스에서 열린 아놀드 클래식에서 세드릭 맥밀란에 이어 2위에 올랐고, 한 주 뒤에는 뉴질랜드 프로에서 브랜든 커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일주일이 지난 뒤 그는 호주 아놀드 기간 동안 무너지고 말았다. 호흡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그는 모든 대회를 포기했고, 그 해는 그야말로 대회 없이 보내야 했다.

맷: “십대 때 이미 성공한 축구 선수였던 달라스는 결국 보디빌더가 되었습니다. 그가 운동에 매진한 이유는 신체 부위의 부족한 점을 메우거나 아무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그런 건 그의 내면의 동기가 될 수 없었죠.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어요. ‘내 몸이 보통 사이즈가 되길 바라는 경우는 아이들과 함께일 때뿐이야. 내 외모 때문에 애들이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거든.’ 그는 아이들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평범해지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어요. 아이들에게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죠. 그의 목표 중 하나는 도심의 빈곤 아동들을 위한 안식처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달라스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를 아이들 무리 속에 밀어 넣으면 됐어요. 그는 136kg짜리 테디베어였죠.

우리에겐 보디빌딩 말고도 신나는 일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친밀한 관계가 되었던 거겠죠. 보디빌딩은 우리의 삶이자 열정이었지만, 우린 축구에 대해 토론하고 우스운 농담을 던지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보디빌더 인생 속에서 정신적 휴식을 갖는 건 달라스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이룬 것들에 대한 부담이 컸으니까요. 그에겐 함께 쉬어 갈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저였죠. 물론 제게도 그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맷이 기억하는 달라스

“달라스는 엄청나게 사려 깊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그가 주변 사람을 살피고 건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었죠. 그는 사람들이 감사와 사랑을 느끼길 바랐습니다. 그에겐 다른 이들에게 흔히 있는 불안감이 없었어요. 무대 뒤에서 그는 심지어 보디빌더보다 축구 선수처럼 행동했죠. 어떤 보디빌더들은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행동해요. 자신만의 작은 세계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것 같죠. 2016 시카고 프로(달라스가 우승했던 대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줄 서 있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달라스가 줄 맨 끝에 자리를 잡더니 모두와 악수를 하고, 한 사람 한 사람과 포옹하며 행운을 빌었어요. 그러고 나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죠. 전 그 일을 평생 기억할 거예요. 달라스는 진정한 신사였습니다.” -맷 얀센

 

웃는 남자 달라스

달라스는 천성이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2016년에 나와 진행한 영상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법에 대해 내게 신나게 설명했다. 긴장감을 떨치지 못하고 손톱을 깨물기 시작한 내게 그가 물었다.

“이해가 가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저스틴 컴튼 씨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달라스는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인터뷰에서 그는 내게 말했다. “전 운동과 다이어트 모두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울해지는 건 거절이에요. 모든 것을 내가 사랑하는 것이라는 범주에 놓으면 기쁨이 따라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지나치게 혹독해요. 그들이 운동과 다이어트를 즐기기로 결심한다면 긍정적인 힘을 얻고 보다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전 그날의 목표를 달성했는지 살핍니다. 최선을 다했는지, 최고의 내가 되었는지 말이죠.”

맷: “우리는 2016 아놀드 클래식 유럽에 출전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갔습니다. [달라스는 9위를 기록함.] 원래 호텔에서 각자 방을 쓰기로 되어 있었는데 체크인하고 보니 작은 방 하나뿐이더군요. 그 방에 있던 침대는 달라스 왼쪽 다리도 안 올라갈 크기였어요. 하지만 그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죠. 그저 바르셀로나에서 산악자전거를 타고 달릴 생각으로 가득했어요. 2017년 초반엔 대회 준비를 함께 하지 않았어요. 관계도 조금 서먹해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린 다시 만났고, 지금 전 이렇게 그의 가는 길을 지키고 있네요. 이 일을 통해 저는 소중한 이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꼭 손을 뻗어 해결해야 한다는 걸 깊이 깨달았습니다. 만약 그때 달라스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면 제게 그의 죽음은 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되었을 거예요.”

 

마지막 인사

2016년 달라스와의 인터뷰에서 들었던 한 문장은 그가 하늘로 떠난 후에도 내 머리를 계속 맴돌고 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 삶에 주어지는 것이 무엇이든, 전 즐길 수 없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크게 심호흡 한 번 하고 다음 문장도 들어 보자. “제 삶은, 아니 모든 이의 삶은 불행과 불만족 가운데 살기엔 너무 짧거든요.”

정말이지, 달라스의 26년 인생은 너무 짧았다. 사람들은 죽음을 당면하면 눈앞에 지난 인생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말한다. 혹시 달라스도 그런 경험을 했다면, 아마 그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청년, 인생보다 더 큰 마음을 가졌고 존경받았던 남자, 인생의 길이와 상관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 빛나는 선례로 영원히 기억될 사람을 발견했을 것이다.

2017년 9월 12일, 맷과 조던 얀센은 첫 아이를 출산했다. 그들은 아이의 이름을 달라스라고 지었다. 달라스 맥카버의 삶의 전설은 앞으로도 우리 안에서 계속될 것이다.

 

거대한 남자의 성장

달라스 맥카버의 신체는 그가 프로 카드를 획득한 2012 북미챔피언십부터 2017 아놀드 클래식까지 계속해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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